안드로이드 탑재 갤럭시S의 막강한 성능

출시까지 기대하고 기대했던 안드로이드폰 갤럭시S가 드디어 등장했다.

 

그럼 지금부터 글로벌 탑 수준의 스펙이라는 갤럭시S의 스펙을 상세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프리미엄 디자인의 안드로이드 탑재 스마트폰 갤럭시S

수퍼 아몰레드 - 4인치 수퍼 아몰레드 디스플레이로 시원하고 선명한 화질

수퍼 디자인 - 9.9미리 두께의 수퍼슬림, 1GHz의 수퍼스피드

수퍼 어플리케이션 - 깊이가 다른 갤럭시S만의 수퍼 어플

 



말그대로 수퍼 스마트폰을 지향하는 갤럭시S의 상세 스펙은 다음과 같았다.

 

OS - 안드로이드 플랫폼 2.1

터치방식 - 정전식 풀터치

디스플레이 - 4.0 " WVGA (480*800), 수퍼 아몰레드

메모리 - 16GB 내장 + 외장메모리 최대 32GB까지 지원

CPU - 1GHz (S5PC111)

배터리 - 1,500 mAH (탈착식2개)

센서 - 가속도/지자기/조도/근접센서

Size/무게 - 122.4*64.2*9.9/121g

비디오 - HD급 고화질 녹화/재생

카메라 - 50만화소 AF +VGA 영상통화 카메라 (셀프촬영, 액션샷, 스마일샷, 파노라마 등 촬영모드 지원)

주요 서비스 - TDMB, T map, Melon, WiFi Nate, T cash (7월중 예정), 영상통화 지원

Connectivity - WiFi(802.11b/g/n), 블루투스 3.0, 3.5파이 이어잭 지원





세계 최초 수퍼 아몰레드 탑재!!

볼  수 없었던 세상이 보이는 수퍼 아몰레드

 

수퍼 아몰레드를 탑재하여 화질이 더욱 선명

>> 기존 아몰레드 대비 선명도를 대폭 개선

 

기존 단말 대비 햇빛이 강한 야외에서도 시인성 개선

사진, 동영상, 게임, 인터넷을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9.9 미리 수퍼 프리미엄 디자인!!

초경량(121g), 초슬림(9.9미리)의 매력적인 디자인

>> 굉장히 가벼운 무게로 스타일리쉬하며 편의성 휴대성 향상

 

4.0인치 / WVGA 해상도의 시원시원한 LCD 사이즈

사진, 동영상, 게임, 인터넷을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스마트폰 이벤트도 진행중이다.

http://android.event.tworld.co.kr


 

빠르고 풍부하게 즐기는 인터넷 사용경험!!

 

1GHz CPU, Wi-Fi 802.11 b/g/n 을 지원하여 빠른 인터넷 속도

웹 브라우징 시 플래쉬 지원으로 PC수준의 인터넷 사용경험 제공

멀티테스킹, 멀티터치를 지원하여 고객의 사용성 획기적 개선

 

동급 최강의 멀티미디어 사용 환경

풍부한 메모리용량 : 내장 메모리 16GB / 외장메모리 32GB까지 확장

HD급 (1280*720 360fps 의 고화질 해상도)동영상 녹화 / 재생

다양한 코덱 지원으로 별도 변환 없이 손쉽게 즐기는 동영상

500만 화소 카메라 + 셀카 / 액션샷 / 파노라마 등 지원

지상파 DMB (내장 안테나)/ 3.5 파이 이어잭

다양하고, 실속있는 어플리케이션 및 SK텔레콤 서비스 지원!!

 

실시간 길안내를 위한 빠른 길찾기 T map

(올인원 요금제 가입 시 무료)

 

다양하고 실속있는 어플을 제공하는 멀티 어플리케이션 스토어 - T store

 

스마트폰 최초 RF 기능 탑재

- T cash 지원(7월중 예정)

 

파일 뷰어 및 문서작성(Think Free)

 

국내 최대 컨텐츠를 자랑하는 교보 이북 뷰어 탑재



 

차별화된 widget 서비스 지원

 

Haptic UI 3.0

안드로이드 UI 를 기반으로 익숙한 햅틱 UI를 접목시킨 햅틱 3.0으로 간편한 사용성을 보장, 최대 7페이지 까지 확장할 수 있는 홈 화면에 위젯이나 바로가기 메뉴, 자주 사용하는 폴더 등을 설정하거나 메뉴 아이콘을 등록하여 원하는 기능을 바로 실행

 

서체 바꾸기 기능 탑재(4가지 서체 지원)

홈/메뉴 화면에서 상단 표시줄을 아래로 드래그하면 직관적인 상태 알림 화면 제공

(네트워크, 진동모드, 부재중 전화, 메시지 등)

 

 

기타

 

해외 이통사 잠금장치 해제

해외 이통사의 잠금장치도 해제 출시되어 해외 체류 시 현지 이통사 USIM 을 끼워 사용할 수 있는 강점

 

통합메시지함 미탑재

UI와 속도 문제로 논란의 중심이 되어 왔던 통합메시지함이 갤럭시S에서는 탑재되지 않아 고객 만족도를 높임

 

by sortieN | 2010/07/19 04:32 | 트랙백 | 덧글(0)

"'건담' 시리즈, 새로운 세계관 필요해"

'건담의 아버지' 도미노 요시유키 감독

 1979년 TV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를 처음 만들어내 일본 애니메이션을 한 차원 높이 끌어올린 '건담의 아버지' 도미노 요시유키(69) 감독이 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지난 15일 개막한 제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그가 만든 건담 시리즈 극장판 가운데 7편이 국내에 처음 상영된다.

도미노 감독은 1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건담'은 더 이상 안 할 것"이라면서도 "'건담'의 연장 선상에서 같은 장르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로봇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세계관을 그리는데 편리한 아이템"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인터뷰 도중 '세계관'이란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했다. 작업을 할 때도 작품을 관통하는 세계관을 구상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사회를 반영한 세계관과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건담' 시리즈를 처음 만들 때는 캐릭터에 대한 조건이 정해져 있었다고 했다. 스폰서가 거대한 로봇을 만들라고 요구했다는 것.

"심각하고 리얼하게 보이는 세계관은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인간형 로봇이 전쟁하는 것을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우주전쟁까지로 발전했죠. '건담'의 세계관이 어둡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전쟁물 만들어낼 때는 행복한 상황을 그려낼 수 없는 거죠. 애니메이션이니까 전쟁물이라도 활기차고 재미있게 그리는 게 좋다는 사람도 있지만 '건담' 전의 작품이 그런 게 많아서 저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어요."

그는 후속편이 계속 만들어질 '건담' 시리즈는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내야 발전할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도미노 감독은 자신이 '건담' 시리즈를 몇 편이나 내놓았는지 기억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다음 작품에 방해되기 때문"이라면서 "최근에는 '건담'에 대해 떠올릴 인터뷰가 너무 많아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데 좋지 않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건담'으로 인해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부로 대우받지만 오히려 다른 일거리가 안 들어오는 불행도 겪었다고 했다.

"별로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은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다'라고 정해버리면 다른 일을 맡기려고 안 합니다. 배우 캐스팅이 비슷한 예죠. '겨울연가'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에게 악역이 돌아갈까요?"

그는 "항상 똑같은 것만 추구하면 이전의 작품을 뛰어넘기 어렵다"면서 "프리랜서다 보니 애니메이션 연출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5일까지 열리는 부천영화제에서는 건담의 최초 극장판 '기동전사 건담' 1~3편과 '기동전사 건담:역습의 샤아' '기동전사 Z건담' 극장판 1~3편을 만날 수 있다.

by sortieN | 2010/07/19 04:27 | 트랙백 | 덧글(0)

유령·송어·카라…한국영화미래 1999년에 제시됐다

이문원의 문화비평 = 지난 7월12일 미국 대중문화 마니아 사이트 ‘덴 오브 긱!(Den of Geek!)’에 흥미로운 포스트가 올라왔다. ‘1982년이 마니아 영화 최고의 해였던 10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이 포스트는 1982년에 등장한 10편의 영화, ‘괴물’ ‘블레이드 러너’ ‘E.T.’ ‘다크 크리스털’ ‘폴터가이스트’ ‘스타 트렉 2’ ‘트론’ ‘48시간’ ‘람보’ ‘록키 3’ 등을 열거하며 “매년 대단한 장르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긴 하지만, 1982년 한 해 동안 얼마나 뛰어난 액션, SF, 판타지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는지 돌아보면 대단히 놀랍다”고 피력했다. 한 마디로 1982년이 할리우드에 있어 장르영화 빅뱅이 일어난 해였다는 이야기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1980년대는 할리우드가 실질적인 ‘세계 영화의 중심’으로 거듭나던 때다. 영화가 좋아서가 아니다. 대폭적으로 세계시장 배급시스템을 갖춰 ‘전 세계 동시개봉’이라는 전무후무한 흥행 전략을 처음 도입한 시기여서다. 또한 홈비디오 시장이 열리면서 쏠쏠한 2차 시장의 수익도 늘어나던 시기다.

일단 시장이 전 세계 규모로 확대되고, 2차 시장까지 열리자 영화 제작편수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늘어났다. 1980년 161편, 1981년 173편에 불과하던 것이 세계 배급 시스템을 가동시키자마자 1982년 428편, 1983년 495편, 1984년에는 오늘날과 거의 동일한 536편으로 치솟았다. ‘덴 오브 긱!’이 1982년을 그토록 예찬한 것도, 바로 전년도 대비 2.5배로 제작편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자 다양성 확보를 위해 각종 장르 실험이 이뤄진 데 따른 결과다.

이런 점에서 1982년이야말로 현재 할리우드 시스템의 원형을 만들어낸 시점이라 칭할 수 있다. ‘꿈의 공장’은 실질적으로 1982년에 보여줬던 비전을 구체화시키고 본격화시켜 가며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1982년 이후 1980년대 전반을 통해 다져지고, 건조됐으며, 사실상 마름질까지 모두 끝냈다.

이후는 반복과 그에 따른 퇴행에 불과하다. 점차 국지적 사회현실을 다룬 영화나 자국민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코미디영화 등은 도태되기 시작했고, 스티븐 스필버그-조지 루카스가 총대를 맨 블록버스터들, 단순하고 보편적인 이야기에 시각적 경이를 양껏 선사하는 영화들이 대세를 이뤘다. 또한 애초 비디오시장만을 염두에 둔 졸속 프로덕션도 늘어났다. 따라서 1982년이 할리우드에 공장식 영화제작 시스템을 자리 잡게 한 최악의 시기라는 평가도 옳지만, 미국 영화산업 구축에 있어서는 가장 위대했던 한 해로 꼽는 것 또한 옳다.

한국을 돌아보자. 같은 식으로, 한국 영화산업에 있어 분기점이 될 만한 해는 언제였을까. 똑같이, 산업체계의 진화와 확대, 그에 따른 장르의 확대와 실험이라는 입장에서 말이다. 이견의 여지는 있겠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분기점은 1999년으로 꼽는 게 옳다.

1999년은 한국영화산업에 있어 두 가지 뚜렷한 변화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시점이다. 먼저 영화투자 구조의 변화다. 한국영화는 1984년 외화수입 개방과 1988년 할리우드 직배영화를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대 초중반 삼성영상사업단 등 재벌 계열사들이 홈비디오 시장과 케이블TV 시장을 노리고 들어왔다 IMF를 기점으로 퇴장하고 난 뒤 일시적인 패닉 상태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1999년을 맞이하며 창업투자 전문 금융회사의 영화제작 참여라는 새로운 투자방식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별다른 이해와 의지 없이 영화산업에 침투했던 재벌 계열사들은 대부분 이전 성공사례에 비춰 영화를 기획하는 진부한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벤처캐피탈은 기획력 중심의 프로듀서들에 투자를 집중시키는 전략을 택했고, 미래시장 확보를 장르 다양화로 잡고 있던 신진 프로듀서들은 날개를 달고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또한 둘 이상의 벤처캐피탈이 공동 투자하는 방식이 도입돼 흥행실패 리스크가 줄면서 제작비 규모가 커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할리우드와 맞대결할 수 있는 규모의 상업영화들이 양산될 채비가 갖춰진 것이다. CJ엔터테인먼트, 동양그룹 씨네플렉스, 롯데 등은 멀티플렉스 극장 라인을 구비해 자사 제작영화들을 곧바로 극장으로 직행시키는 시스템을 갖췄고, 이에 따라 거대 영화사 구축의 기틀이 잡히기도 했다.

다음으로 영화 인력의 대대적인 ‘물갈이’도 1999년 즈음 가시화․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한국영화계는 ‘시네 필 감독이 없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제한된 영화관람 환경으로 인해 영화에 애정은 있을지언정 폭 넓은 영화 지식과 환경적 경험은 없는 이들이 충무로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4년의 외화수입 개방과 1980년대 후반 홈비디오 시장 확대로 새로운 시네필형 영상세대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들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영화업계로 속속 진출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구조와 유럽 예술영화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던 이들은, 프로듀서들에 기반이 마련되자 개성적인 상업적 장르 영화로 방향을 잡아 전체 시장 판도를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 결과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자처한 ‘쉬리’가 서울관객 기준 245만 명을 끌어들여 외화 포함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경신했다.(기존 기록은 ‘타이타닉’의 197만 명) 전년도인 1998년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관객 기준 25.1%에 그친데 반해 1999년에는 39.7%로 급상승했다. 이는 외화수입 자유화 직전인 1984년의 38.5%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또한 한국영화 최대 비수기인 여름 시즌에도 8월 기준 49.7%까지 시장점유에 성공하면서 고질적인 할리우드 콤플렉스가 점차 상쇄되기 시작했다.

수출 실적도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1998년 307만 달러 수출에 비해 1999년에는 597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려 전년대비 94% 성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뒀다. 여기에는 ‘쉬리’의 일본 수출이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이듬해 1월22일 일본에서 개봉된 ‘쉬리’는 일본 주간 흥행 1위를 비롯 총수입 18억 엔을 거둬들이는 쾌거를 거뒀다. 이렇듯 성공적인 1999년을 거쳐 2000년에 이르자 강제규필름, 명필름 등 유수 프로덕션은 자산가치 측면에서 300억 원 안팎의 평가를 받게 됐다. 이전까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1999년 한 해 동안 투자 환경 변화와 인력 물갈이를 통해 등장, 어마어마할 정도의 반향을 일으킨 한국 장르 영화들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앞서 언급한 ‘덴 오브 긱!’ 포스트처럼, 여기서도 ‘10가지 이유’를 ‘10편의 영화’를 통해 들어보기로 하겠다.

◇쉬리 (d. 강제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바로 전년도인 1998년 ‘퇴마록’이 처음 사용했다. 그러나 이 캐치프레이즈를 대중에 제대로 설득시킨 영화는 ‘쉬리’로 보는 게 옳다. ‘쉬리’의 성과는 여러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한국도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는 점에서 가장 크게 평가될 수 있다. 그리고 물론, 투자한 비용의 몇 배 이상 수익을 거둬들여 ‘블록버스터 전성시대’로 이끌기도 했다. 한편 이듬해 일본시장에서까지 대성공을 거둬 한국 상업영화의 자신감을 한층 더 드높이기도 했다.

◇인정사정 볼것없다 (d. 이명세)

한국영화계에서 범죄 스릴러 영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5년작 ‘런어웨이’ 정도부터로 봐야한다. 이후 ‘피아노맨’, ‘블랙잭’, ‘본투킬’ 등이 등장했지만 모두 흥행에선 참패했다. 모두 나름의 의미는 있었지만, 당장 할리우드 범죄 스릴러와 경쟁할 만한 수준은 못 됐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성과’에 불과했다. 그러던 흐름을 뒤바꾼 것이 바로 ‘인정사정 볼것없다’다. 구조적 완성도와 미학적 독창성, 그리고 자국영화 특유의 현실 밀착성 측면에서 ‘인정사정 볼것없다’는 사실상 범죄 스릴러 장르를 마침내 한국 영화시장에 정착시킨 영화로 볼 수 있다.

◇유령 (d. 민병천)

돌아보면 이런 영화가 1999년에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잠수함 영화’라는 건 사실 전쟁영화 중 가장 뒤늦게 개발된 서브장르이며, 몇 가지 제한된 코드 안에서 플롯을 풀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까다로운 장르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상 처음 등장한 한국형 잠수함 영화 ‘유령’은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고 지금 봐도 거의 손색이 없는 세련된 상업영화로 만들어졌다. 1999년을 통틀어 최고의 걸작은 아닐지라도, 당시 시장분위기에서 나올 수 없었던 최고로 어색한 영화, 이후 1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2번째 잠수함 영화가 나오지 못할 정도로 가장 특이했던 엔트리로 꼽을 수 있다.

◇용가리 (d. 심형래)

‘할리우드를 정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B급 괴수영화.’ 그런 기묘한 콘셉트는 ‘디워’ 이전 같은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에서 처음 나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용가리’나 ‘디워’나,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건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용가리’는 ‘괴수영화’라는 특이한 장르를 대중에 널리 인식시킨 영화 정도 의미는 충분히 있다. ‘용가리’ 덕택에 1999년은 정말로 풍부한 장르 빅뱅의 해로 여겨졌다. 그때도 그 점이 기뻤고, 지금도 역시 뿌듯하다.

◇텔 미 썸딩 (d. 장윤현)

개봉 당시 ‘하드고어 스릴러’라는 서브장르 명을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온 영화다. 당시는 장르 자체에 목말라 듣도 보도 못한 장르 명을 포스터 위에 붙여놓으면 그 자체로 마케팅 포인트가 되던 때다. ‘하드고어 스릴러’라는 것도 알고 보면 간단했다. 일반 스릴러 형식에 호러적 요소를 접목시켜 살육장면 등을 더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하이브리드였다. 그러나 아무도, ‘텔 미 썸딩’이 표방한 하드고어 스릴러적 접근방식이 향후 한국 스릴러영화의 일관된 경향으로 자리 잡게 될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복수는 나의 것’, ‘극락도 살인사건’, ‘추격자’ 등 근래 한국형 스릴러 히트작들을 돌이켜보면 쉽다. 시대를 앞서간 영화라고 보기엔 힘들지만, 분명 시대를 열어젖힌 영화인 건 맞다.

◇송어 (d. 박종원)

굳이 말하자면, 존 부어먼의 ‘서바이벌 게임’을 한국화 시킨 영화다. 그런데 그 한국화의 과정이 사뭇 치밀하고 정교하다. 스릴러 장르에 사회파적 요소를 접목시키는 방식은 이후 ‘살인의 추억’ 등에서 되풀이되는 부분이지만, ‘송어’는 지금 봐도 탁월한 완성도로 이러한 접근의 정점을 찍은 영화다. 그리고 이상스러울 정도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언급되지 않는 영화이기도 하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사진·d. 유상욱)

이상의 시에 담긴 비밀 메시지를 해독하다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결국 서울 한복판에서 거대 동굴을 발견해 비밀을 풀게 된다는, 이른바 ‘미스터리 어드벤처’ 장르 영화다. 개봉 당시 그런대로 성공을 거뒀음에도 이후 뚜렷한 후계자가 없는 것을 보면, 당시로서나 지금 입장에서나 지나치게 모험적인 시도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어설프지만 여전히 신기한 영화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d. 김태용, 민규동)

한국에 호러 장르의 부활을 알린 건 전년도인 1998년이었다. ‘여고괴담’과 ‘조용한 가족’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단순히 그런 열풍의 후계자 정도가 아니었다. 어찌 보면 한국형 호러가 가야할 길을 미리 짚어준 영화에 가까웠다. 전편과 같은 일본식 학원 호러를 뛰어넘어, 잘 관찰된 학원 영화이자 대단히 섬세한 동성애 영화였고, 불안정한 소녀정서를 폭발시키는 기제로 호러적 요소가 접목됐다. 이처럼 야심찬 접근은 이후 ‘장화, 홍련’, ‘불신지옥’ 등으로 이어졌지만, 정작 ‘여고괴담’ 프랜차이즈는 그런 야심을 져버리고 전편의 일본식 학원 호러로 돌아가 버렸다. 그나마도 이제 생명력을 다 하고 ‘고사’ 프랜차이즈에 바통을 넘겨준 듯하지만.

◇간첩 리철진 (d. 장진)

이른바 ‘햇볕정책 드라마’의 효시 같은 영화다. 같은 경향이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 ‘남남북녀’ 등으로 이어졌다. 영화 자체는 전형적인 드라메디 구조에서 벗어나질 못했지만 소재와 접근방식 차원에서 향후 일련의 영화들에 큰 영향을 줬다. 아무리 기억을 돌이켜봐도 북한 스파이가 선인(善人)처럼 그려진 건 이 영화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카라 (d. 송해성)

판타지 멜로 장르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것은 ‘카라’가 아니다. 그 의미에 충실한 영화들만 고른다 해도 이미 3년 전인 1996년 ‘고스트 맘마’가 시도했었다. 그러나 향후 ‘시월애’, ‘동감’, ‘인어공주’ 등으로 이어질 일련의 경향을 제시한 건 역시 ‘카라’ 쪽이다. 모두 어긋난 시간에 대한 회한,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을 그린 영화들이다. 비록 개봉 당시 흥행에 참패해 완전히 잊혀지고, 이제 ‘카라’라는 제목에서 떠오르는 건 아이돌그룹 밖에 없지만, ‘한국에서 판타지 멜로란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가’를 가장 먼저 보여준 장르 선구자였다는 점을 부정하긴 어렵다.

이밖에도 1999년의 장르 영화들 중에는 짚을 만한 것들이 많다. ‘해피 엔드’는 1970년대 김기영 감독이 붐을 일으킨 치정 스릴러 장르를 되살려냈고, ‘주유소 습격사건’은 코미디 장르의 진화로 주목받았다. 최초의 댄스영화 ‘댄스 댄스’, 의학 수퍼히어로물 ‘닥터 K’, 판타지 코미디 ‘자귀모’, 버디영화 ‘태양은 없다’ 등이 계속 시장에 등장해 흥망을 겪었다.

근래 할리우드 소식을 접하다 보면 한 가지 뚜렷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1980년대의 귀환’이라는 점이다. 당장 이번 여름에만도 1984년작 ‘베스트 키드’ 리메이크와 1983~87년 사이 방영됐던 TV시리즈 ‘A특공대’ 극장판, 1987년작 ‘프레데터’의 속편 등이 등장해 좋은 반응을 얻어내고 있다. 장르 빅뱅 시기의 영화들이란 많건 적건 그 정도의 애착은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어쩌면 지금으로부터 몇 년이 더 흐르고 나면, 위 언급한 1999년의 장르 영화들 중 몇몇은, 지금 미국에서처럼, 리메이크의 과정을 진지하게 밟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by sortieN | 2010/07/19 04:25 | 트랙백 | 덧글(0)

DJC로 들어가는 문, 이병헌 한채영 주연의 인플루언스



http://www.the-djc.com/



DJC 가 뭐지? 이병헌이 등장한 첫장면부터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 광고. 윈저엔터테인먼트의 인플루언스


에피소드 1은 두번째 시작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하나만 기억해 두시면 됩니다. 당신은 이미  한 번 죽었다는 것!"

실제로 존재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최고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미스터리한 클럽을 무대로 하고 있다.

DJC로 향하는 문은 어디에나 열릴 수 있다. 그러나 선택된 사람에게만 그 문은 허락되며 이곳에서 약속된 모든 것은 반드시 지켜져야한다.

100년이 넘도록 이곳으로 선택된 사람들을 초대하는 W (이병헌). 다이아몬드 쥬빌리에 갇힌 채 DJC를 지키는 J(한채영). 그리고 DJC에 초대된 사람들을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2010년 3월 100년을 기다려온 DJC의 약속이 모습을 드러낸다. 라는 다소 거창한 타이틀로 등장한 광고 영상.

처음에는 뭐지? 하는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마치 드라마나 새로 나온 영화의 트레일러같은 느낌때문이었다.

영화처럼 잘 짜여진 구성과 그 스케일은 흔히 봐오던 CF의 인상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 시리즈의 제목은 인플루언스.

제작은 윈저엔터테인먼트 리얼라이즈 픽처스에서 했다.

평소 영화를 볼때도 연출한 감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감독이 궁금했는데 이재규 감독이다.

장르는 미스터리 디지털 블록버스터를 표방하고 있다. 디지털 블록버스터라... 디지털 영상에 블록버스터급의 엔터테인먼트를 살리겠다는 의미인것 같다. 그리고 미스터리 장르의 구조로 극의 구성이 짜여져있음을 알수있다.

 

이 DJC 영상에서 주목할만한 컨셉은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이다.

기업의 제품 및 브랜드를 엔터테인먼트에 접목해서 노골적이고 과도한 브랜드 노출을 피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역할에 중점을 둔 콘텐츠를 지칭한다.

브랜드의 핵심 가치, 신념 등을 누구나 쉽고 즐겁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먼저 등장인물 캐릭터 분석에 들어가볼까 한다.

미스터리 가이더 W로 나오는 이병헌이다.

"다시 당신의 체온을 느끼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걸까?"




다이아몬드 쥬빌리에 갇힌 슬픈 여인 J, 한채영.

"그 사람과 영원히 같이 할 수 있다면..."

여신 같은 모습이다.



120억 게이트의 진실을 손에 쥔 앵커 김우경 역의 전노민.





이 주요 캐릭터 삼인방 외에도 도박 빚으로 위기에 몰린 폴앤에슐리옥션 한국지사장 최동훈 역의 김태우.

조선의 마지막을 지키기위한 결단을 앞둔 고종으로 분한 특별출연의 조재현. 캐스팅이 정말 화려하다. 영화에서도 한꺼번에 만나기 힘든 빅스타들의 출연 만으로도 상당한 존재감을 준다.






by sortieN | 2010/03/18 09:33 | 트랙백 | 덧글(0)

노랑을 찍어 새봄을 색칠하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의 개울가에 핀 산수유꽃이 봄의 전령처럼 당도했지만, 뒤편의 지리산 자락에는 희끗한 잔설이 남아있고, 천변에는 지난 가을의 억새가 아직 성성하다.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다.

‘봄의 색깔’이라면 아무래도 노란색이지 싶습니다. 봄의 노란색에서는 솜털 보송보송한 병아리를 살포시 쥘 때와 같은 촉감이 느껴집니다. 지리산 자락 아래 구례 땅은 그런 노란빛으로 가득합니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일대의 마을에는 온통 산수유꽃들이 만개해 봄의 노란빛을 화사하게 뿜어내고 있습니다. 이즈음 산수유꽃으로 사태가 난 구례의 마을에 들어선다면 가볍게 쥔 손바닥에 전해지는 병아리의 심장이 가늘게 팔딱이는 듯한 느낌이 전해질 겁니다.

봄 여행을 떠나자면 전남 구례 땅을 어찌 피하겠습니까. 지리산과 섬진강을 넉넉하게 품고 있는 구례의 너른 들에는 지금 발목까지 올라온 보리밭과 밀밭의 초록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구례읍에서 지리산 자락에 바짝 다가붙어 산동면 일대로 접어드는 길에는 온통 노란 산수유꽃으로 사태가 났습니다. 산동면 일대에서는 굳이 산수유마을로 이름난 상위마을까지 찾아들지 않아도 됩니다. 지리산 다름재와 숙성치 아래 달전마을에도, 견두산 아래 계척마을과 현천마을에도 죄다 산수유꽃이 꽃대궐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을의 돌담길 안쪽에 드문드문 순백의 꽃망울을 틔운 매화도 노란 산수유꽃 무더기 속에서 더 찬란합니다.

이즈음 구례를 찾아간다면 지리산 자락에 깊이 들어선 이름난 절집들을 빼놓을 수 있을까요. 구례의 화엄사. 어찌나 꽃잎이 붉은지 검은빛이 돈다 해서 ‘흑매’란 이름이 붙은 화엄사 각황전 앞에 피어나는 매화는 그야말로 ‘봄의 절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리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물이 그득히 담긴 천은제를 끼고 있는 천은사의 맑은 기운도 못잖습니다. 여기에다 피아골 계곡의 연곡사를 보탭니다. 피아골은 단풍이 붉게 물드는 가을이 제철이라지만 연곡사는 오히려 이른 봄의 정취가 더 낫습니다. 연곡사의 산문을 지나 절집으로 들어서는 길에는 일렬횡대로 둘러친 매화며 산수유들이 온통 꽃담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단단한 화강석을 마치 비누조각을 다루듯 ‘가릉빈가’(전설속의 새)의 모습을 선명하게 새겨낸 부도탑을 둘러보는 맛도 있습니다.

구례를 찾아간 날은 마침 지리산에 폭설이 쏟아진 이튿날이었습니다. 남원 쪽에서 지리산을 넘는 861번 도로는 폭설로 통제됐지만, 지리의 남쪽사면인 구례 쪽에서 재를 지나 성삼재까지는 오를 수 있었습니다. 봄을 만나러 구례를 찾아가는 길이라면 지리산의 아랫자락을 둘러가는 길보다는 지리산의 중심을 관통하는 이쪽 길을 택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합니다. 그 길로 들어선다면 겨울과 봄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습니다. 아직 물러가지 않은 지리산의 겨울과 그 겨울에서 봄으로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을 지나서 남도 땅의 봄의 정취에 닿을 수 있을 테니까요.

by sortieN | 2010/03/18 09:26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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